<윤인태>
중학교 앨범에서 퍼온사진입니다.
윤인태가 누구냐고요?
중학교 3학년 때 같은반 친구였고 지금은 창원지방법원장입니다.
왜 뜬금없이 이친구 얘기를 쓰냐면요.
최근 트위터에서 `개념판사`로 널리 알려진 창원지방법원 이정렬 부장판사가 서면경고를 먹었습니다.
사유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명박 대통령을 비하하는 ‘꼼수면’과 ‘가카새끼 짬뽕’ 패러디 사진을 게재했다는 것입니다.
그 패러디물이 트위터상에서는 일반적으로 `웃자고` 만든 것으로 인식되어 널리 퍼졌으나 판사의 신분으로 사적인 공간이지만 페이스북에 올린 것은 부적절하다는 판단을 했나 봅니다. 사적인 영역에 올린 글이 종종 문제가 되었는데 최근 SNS에 밀려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들이 기사화하면서부터 입니다.
예를들자면 내 개인의 미니홈피에 일기형식으로 메모를 했는데 조선일보 기자가 그것을 기사화하면서 문제제기를 한다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는 의미죠. 이 부장판사는 예전부터 진보적인 판결을 하는 분으로 이름을 알렸던 분이라 조선일보의 먹이가 됐습니다. 최근에는 날선 공방도 가끔하고요.
판사도 사람이고 자유롭게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하는데 보수언론들은 그들에게 갓쓰고 도포입으라는 요구를 하지요. 서민의 억울함을 판결로써 공정하게 풀어준다는 것, 이게 오히려 이상한 세상이 되어서 그럴까요? 전관예우, 피해자를 가해자로 바꿔치기 하는 것이 다반사가 되다보니 무감각해져서 분노하지 않는걸까요?
이 부장판사를 비롯한 `개념판사` 3인은 이제 더 이상 조선일보에 쫄지않겠다고 했습니다. 옛날에는 조선일보에 한번 찍히면 옳고 그름을 떠나 다른판사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법복을 벗었다는군요. 판사들 전체가 매도당할까봐 그랬다는 말이지요.
하필 창원지방법원장이 윤인태라 속으로 징계를 하지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서면경고를 했더군요. 서면경고는 경징계라 이 부장판사의 앞날에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자유로운 소통을 하지 못할까 걱정스럽습니다. 참 용감한 판결과 소통을 했던 드문 판사라...
윤인태 법원장은 키가 작아서 우리반 1번이었습니다. 저는 37번이었고요. 1번은 제일 앞자리에 앉기 때문에 들어오면서 한번 나가면서 한번 까까머리를 쓰담기도 했던 친구입니다. 참 활달하고 귀여웠거든요. 덩치에 주눅들거나 불의를 보면 눈감는 친구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판사가 제격이라 생각했습니다.
사법연수원 수료직후였는지 정확하지는 않으나 친구 서넛이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당시에는 무대가 있고 노래도 부를 수 있는 극장식 맥주집이 유행했는데, 거기서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이친구가 노래를 부르고싶어 신청을 해놨는데 술취한 대여섯명의 중년들이 무대를 점거(?)하고 내려오질 않더군요.
이친구가 조용히 웨이터를 부르더니 왜 이런상황을 방치하느냐, 우리도 노래를 신청해놨는데 공평하게 불러야 옳은 것 아니냐고 얘기하니 웨이터 왈, 모 경찰서에 근무하는 분들이라서...라며 말꼬리를 흐리더군요. 그 말을 듣자 벌떡 일어나 무대위로 올라가더니 호통을 치더군요. 당장 내려가라고.
상대는 떡대좋은 대여섯 덩치작은 이친구는 혼자ㅋㅋ 처음엔 그들이 뭐 이런놈이 있나 하는 눈초리로 째려보더니 논리정연하게 따지니까 꼬리를 내리고 슬금슬금 내려오더군요. 보통 술자리에서 그런 모습 목격하면 더 통쾌하잖아요. 그날 신나게 노래하고 취하도록 마셨습니다.
부산고법 부장판사로 재직할 때 법원 판사실로 가서 만나고 그 이후로는 못본 것 같습니다. 각자 바쁜 삶을 사는 입장이라 그랬겠지요. 이 부장판사가 서면경고먹고 올린 글을 보니 따뜻하게 타이르는 모습이 형님같아 존경스러웠다고 하더군요. 참 괜찮은 친구맞습니다.
트위터를 보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주절거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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