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먼저간 친구가 문득 그리워지는 밤이다

진이아빠 2012. 2. 24. 22:38

시골의 겨울밤은 너무나 조용하고 적막감마저 든다.

이런날은 술생각도 나지만 지난 추억도 스친다.

 

2003년, 그의 나이 마흔 일곱에 세상을 떴다.

3월에 어머니를 여의고 힘들어하고 있을 때 그 친구의 부음을 들었다.

그 전부터 몸이 안 좋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렇게 쉽게 갈 줄은 몰랐기에 많이 놀랐다.

그는 당뇨합병증으로 몇 달간 고생하다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과 이별했다.

 

어릴적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를 함께 다녔고 그가 고향을 떠난 적이 없으므로 고향에 갈 때마다 만나는 꽤 친한 친구였다. 시쳇말로 법이 없어도 살 심성이 고운 친구였다.

처가는 여기서 가까운 지리산자락 산청 어디쯤이라 했고 아이는 남자 둘, 고등학생이었다.

그의 죽음은 참 억울한 죽음이었다.

 

그의 맏형은 국내굴지의 자동차회사 1차협력업체 대표였다.

아랫동생들을 불러들여 함께 일했는데 사업규모를 다른 자동차업체까지 확장하려다 사단이나서 망했다.

친구도 형밑에서 일하면서 남들과 똑같이 월급쟁이생활을 했는데 만만한 게 동생이라 그랬을까,남들은 어느 정도 챙겨줬으나 동생월급은 못준 모양이었다.

 

막판에는 알뜰살뜰 모아둔 억대의 돈까지 빌려가서 갚지 않았다는 것.

공장은 압류딱지가 붙고 오갈곳 없어 공장내 숙소에 살던 친구는 길거리로 내쫓길 형편이었다.

그런데 그 후에 안 일이지만 사장이던 맏형은 여기저기 내연녀를 두고 집을 사줬는가 하면 호화 요트도 마련해 랄라룰루 헛짓하고 다녔더라는 거다.

 

친구는 홧병이 났고 그때부터 알콜에 의존해 중독에 이르렀다.

통통하던 살이 홀쭉하게 빠져 어디 아프냐고 물어도 괜찮다며 병원에도 안 갔다.

만나면 그저 술이나 한 잔 사달라고 하는, 입에선 언제나 술냄새가 풀풀 나는 그런 삶이 이어졌다.

2년 정도 그렇게 세월을 보냈었나? 술에는 장사가 없다더니 당뇨를 앓기 시작했다.

 

아내가 직장을 얻어 아이 뒷바라지를 하고 친구는 압류딱지가 덕지덕지붙은 공장에 갔다가 선술집에 들러 술마시는 일상이 계속되었다. 맏형은 소식을 끊어 돈을 돌려받을 수 없었다.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문병갔더니 괜찮다며 곧 훌훌털고 나갈테니 술이나 한 잔 하자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로부터 한 달이나 지났을까 병원에서 사망했다는 연락이 왔다.

당시만 해도 우리동네엔 선산이 있는 집은 거의 다 매장을 하던 때라 멋진 꽃상여를 주문하고 양지바른 남향의 가족묘, 부모님의 바로 아래에 묻어줬다.

출상할 때 제문을 내게 지으라해서 장문의 글로 장례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눈물바다를 이뤘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살던 집에서 바라보면 그 친구의 묘가 보이고 서너시간 등산코스가 그 친구의 묘소옆으로 나있어 자주 찾았는데 여기로 오고는 한 번도 가보질 못했네. 그 친구 유택에 눈이 하얗게 쌓인 어느날 홀로 목놓아 울었던 기억이 날 때면 지금도 코끝이 맵다.

그 해엔 어머니와 친구를 이별한 슬펐던 해로 기억되고 있다.

 

바람이 차다.

문틈으로 추억이 스멀스멀 기어들어오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