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정상의 눈은 녹지않을 듯>
<창밖에 임시로 온도계를 달았어요>
어제가 크리스마스였는데 종교가 없는 저희로서는 딱히 하는 일 없이 보냈네요.
바깥온도가 늘 궁금해서 싸구려 온도계를 하나 사다가 대충 달았더니 궁금증은 해소가 되네요.
이 시간 영상 2도 정도니까 가장 온도가 낮은 일출직전에는 얼마나 추울지 짐작이 가겠지요?
한가한 시간에 문득 어릴적 크리스마스때가 생각나서 몇자 긁적일까 합니다.
초등학교 입학직전이었던가 싶은데요, 제 고향동네에 처음으로 침례교회라는 것이 세워졌어요.
할머니손에 이끌려 가끔 가까운 절간에 공양얻어먹으러 갔던게 종교를 최초로 접한 경험인데.
교회는 절간과는 다르더군요. 어느샌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있었고 아이가 아이를 데리고 가고 오고.
형님 누나들 학교갔다오면 딱지치기 구슬치기 구경하거나 소풀뜯기러 가던게 놀이의 거의 전부이던 시절.
교회는 정말 구세주같은 곳이었나 봅니다. 귀하디 귀한 비과, 찰떡같은 것을 공짜로 막 주는 곳.
세월이 흘러 연말이 가까워지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을 무렵, 어린 나는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행사`준비로 바빴습니다. 이브에는 새벽찬송을 가야 하고 당일에는 연극도 해야 하는 일정들이 궁금하기만 했습니다.
드디어 성탄전야, 엊그제 이곳같이 북풍은 어찌 그리 매섭던지 귓볼이 떨어져나갈 듯한데.
헤진 아버지의 외투는 바람막이 하나없는 벌판에서 마주불어오는 초강력 마파람에 큰 도움이 되지않았습니다. 시골의 마을들이 수백미터마다 몇채씩 있는 형태라 눈물, 콧물 범벅에 달달 떨면서 겨우 도착해서 외칩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어떤집은 다과라도 내놓는데 어떤집은 시끄럽다고 내쫓더군요. 세월이 한참 흐른뒤에야 알았습니다. 같은 종교를 가진분들은 따뜻이 맞아주고 다른 종교를 가졌거나 관심없는 분들은 자다가 날벼락이었다는 것을요.
그렇게 밤새 헤매다가 여명이 밝아올 무렵에야 교회로 돌아와 따끈한 떡국 한그릇으로 언 몸을 녹였지요.
그렇게 몇 년을 다녔나 봅니다. 놀기삼아 말이죠. 대부분 아이들이 그랬듯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교회를 떠났습니다. 명절에 겨우 한 켤레 얻어신을까말까한 새 운동화를 도둑맞는 것이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누군가 그런 목적으로 잠시 교회를 나와 훔쳐간 것 같습니다. 맨발로 집에 가면 부모님은 당연히 교회그만가라고 하시죠.
매년 크리스마크만 되면 어릴적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납니다. 혹독했던 추위와 새벽찬송.
운동화 잃어버리고 절망했던 기억과 부모님께 혼났던 기억. 그래도 어린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또 다시 그렇게 행동할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같은 꼴통 목사들이 없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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