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알 수 있는 신,구제품>
<지하수 관정>
지난 토요일
저희집에는 두 팀의 민박손님이 계셨습니다.
한 팀은 부산과 수원에서 오신 고교동창 아가씨 세 분이고
다른 한 팀은 실상사작은학교(대안학교)에 볼일 있으시다며 간혹 오시는 단골손님이셨습니다.
아침 일찍 전화벨이 울려서 받으니 고교동창팀원 중 한 분이십니다.
"물이 안 나오는데요"
가장 곤란할 때가 이런 경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민박집이라고 믿고 묵었는데 의식주의 기본을 해결할 수 없다면?
부랴부랴 손님들을 모시고 인월 목욕탕을 갔습니다.
영하 7도의 날씨에 씻고 나올 때까지 40여 분 기다렸다가 다시 우리집으로 모셔왔습니다.
목욕비를 드렸으나 받지도 않으시고
오히려 고맙다고 말씀하시니 더 미안하고, 몸둘바를 모르겠더군요.
***
일요일
이장과 통화를 몇 번 하고 지하수 관정이 있는 곳으로 갔더니 업체관계자와 이장이 수리를 하고 있었다.
약간의 일손을 보태고 해결책을 물어보니 깔끔한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펌프가 고장이라 새것으로 바꿨으니 어쩌면 괜찮을지 모르겠다
지하수가 부족할 수 있다.
지난 추위에 관로가 동파됐을지 모른다. 그럴 경우 해동되는 봄까지 동파지점을 못 찾을 수도 있다.
며칠 후면 치러질 이장선거에 도전할 누군가가 이장을 골탕먹이려고 고의로 스위치 조작을 했을지 모른다.
모든 가능성이 불확실해서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일요일 저녁 펌프교체한 업자는 보내고 이장을 포함한 몇이서 소주를 거나하게 마셨다.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고 며칠 후 있을 이장 선거의 여론향방도 자연스레 거론되었다.
나야 아직 누가누군지 다 알지도 못할 뿐더러 적극적으로 개입할 여건도 안 되지만 감투가 좋긴한가 보더라.
어제
본격적으로 관공서에 전화를 했다.
먼저 수도업무를 담당하는 지자체에서 가장 높으신 분께 전화를 걸었다.
여러 이야기가 오가는 중에 스치는 생각, 역시 시골일수록 관료들은 뻣뻣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원론적인 공무원들의 답변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시혜라도 주는 듯한 답변은 거북했다.
"사소한 관리는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하고요, 큰 것들만 시에서 해줍니다"
"아, 그래요? 그럼 물이 안 나와서 며칠째 먹는 건 고사하고 화장실 사용도 못 하는 건 큰 건가요? 작은 건가요? 결과가 이런데 답변이 영 서운하게 들리네요!"
누구냐고 꼬치꼬치 묻길래 전화번호랑 이름, 민박집이름까지 다 말해주고 빠른 조치를 취하겠다는 답변을 들은 후 끊었다. 오후에는 면사무소는 이 일을 알고 있을까 싶어서 면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는 외근중이라 하고 다른 분과 통화를 하는데 물이 끊긴 사실을 모른다고 했다.
면사무소는 같은마을에 있으나 자체 지하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알지 못 했고 아쉬울 일은 없을 거다.
일몰무렵
일이 어떻게 진전되었나 보기위해 지하수관정에 갔더니 사람은 없고 예상보다 펌핑은 양호했다.
이장을 찾아나섰더니 그새 시청에서 직원이 나왔는지 둘이서 이곳저곳 다니며 누수지점을 찾고 있었다.
누수지점은 찾지 못 하고 누수탐지업자를 선정하던지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대화나눴다.
어제 어둠이 내릴 무렵 이장이 방송을 한다.
"저녁 6시부터 아침 7시까지, 낮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제한적으로 물을 공급하겠습니다"
오늘 아침 6시 50분 알람에 맞춰 일어나 얼른 물을 틀어봤더니 수압이 완전 정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현재까지 아무 문제없이 물이 정상공급되고 있다.
결론은?
지하수를 퍼올리는 펌프가 고장이었다?
이장을 견제하려는 누군가가 고의로 전원을 내려 펌프의 작동을 멈추게 했다?
동파가 됐다면 정상공급될 리는 없고...
이런 미스터리한 시골에서 나는 오늘도 수도꼭지를 이따금씩 주시하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