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집이지만 정만큼은 흥부네보다 더하면 더했지...>
12월 31일 자정을 막 넘길 무렵
교회가신 목사님 부부를 기다릴 겸 캔맥주를 마시며 집 앞에서 폭죽놀이 구경을 하고 있었다.
한창 하늘을 보며 탄성을 지르고 있는데
자그마한 아가씨가 말을 걸어 오는 게 아닌가!
물론 영어로 말했고
난 잘 알아듣지 못해 되묻기를 몇 번 의사가 통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한국에서 왔느냐
바로 옆집이 우리 할아버지 댁이니 같이 가서 명절음식을 먹자.
뭐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하다가
술도 약간 마신 김에 동의를 하고 그집으로 갔다.
집은 너무나 비좁고 초라했지만
사람들은 너무나 밝고 쾌활하게 나를 맞아 주었다.
딤섬같은 것에서 부터
우리입에도 잘 맞는 여러가지 음식들이 잘 차려져 있었다.
그녀의 엄마는 일본에서 기자였다고 하고
할아버지는 일본 유수의 전기회사 기사였다고 소개를 했다.
그들은 아무도 술을 마시지 않아
나도 들고갔던 캔을 슬그머니 놓고 딤섬을 몇 조각 먹는데 밖이 소란했다.
나는 몰랐는데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이 꽤 지났는지 교회갔던 목사님 내외가 나를 찾아 난리가 났던 것이다.
여기저기 수소문해도 나를 알지 못하는 동네 사람들이 알려줄리 만무하고
동으로 서로 왔다갔다 하며 부르고 다녔던 모양이다.
한참 후 소란해서 밖을 보니
나를 부르는 소리였고 일하는 식구들까지 온 가족이 다 나와 찾고 있었다.
먹던 음식을 팽개치고 고맙다는 인사만 남긴 채 허겁지겁 집으로 갔는데
성질이 깔깔한 목사님은 한국도 아닌 외국에서 아무나 따라가면 어떡하냐고 화를 낸다.
맞다, 백번 지당하다.
하지만 난 혼자 무료했고 해외에 나가면 일반인들의 가정을 방문해야 그 나라의 풍습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꼭 방문의 기회를 만드는 습성이 있다.
암튼 한바탕 소란이 있었지만
그들의 삶이 내게 많은 교훈을 안겨줬다.
늙고 병든 부모님을 위하여
손자 손녀를 데리고 방문해서 산해진미를 대접하는 미풍양속, 우리의 옛날과 같았다.
다음 날 손녀 둘의 손을 잡고 칸틴(구멍가게)에 가서 과자라도 하나 집혀주려 했는데
그놈의 칸틴은 주인장 마음대로인지 종일토록 문을 열지 않았다는 것 아닌가^^
며칠 후 그 손녀가 메일주소가 메모된 메모지를 줬다.
귀국하여 고맙다는 메일을 보냈는데 회신이 없었다.
배달사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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