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이렇게 훌쩍 자랐을까, 애비 신발이나 크기가 비슷한 딸아이 신발>
조금 전 농협에 볼일이 있어 가려고 자동차 웜업하던 중 문득 지난 설연휴 딸아이와 산에 가면서 신었던 신발에 진흙이 잔뜩 묻었던 생각이 났다.
눈이 내려 질척한 길을 둘이서 두어 시간 걸었더니 신발이 진흙으로 엉망이 되었으나 당장 씻을 수도 없고 해서 그냥 신발장에 넣어뒀었다.
녀석에게 다음날이나 다다음날 털어라고 했거늘 나도 잊고 아이도 잊어, 아이는 그냥 상경하게 되었고 신발은 그대로 있었다.
청년실업이 사회문제로 대두된지 몇 년이 흘렀건만 사실상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청년빈곤`이란 용어까지 언론에 오르내리는 걸 보니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이는 지난 2월 1일부터 소위 말하는 `정규직` 일자리를 얻어 출근하게 되었고 목표로 하던 곳은 잠시 뒤로 미룬 듯하다.
속내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이의 성격을 알기에 어련히 알아서 하랴 하고 잠시 관망하는 중이다.
아이의 신발을 털면서 혹시 나의 아버지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지난 2000년 고인이 되신 나의 아버지는 1915년생이시다.
6남 2녀의 막내인 나는 계산상 아버지가 마흔 둘일 때 낳으셨다.
아버지 회갑연 때 나는 스물 한 살이었고 내가 결혼할 때 아버지는 무려 일흔 셋이셨다.
나는 아버지의 눈물을 세 번 보았다.
첫 번째는 내가 대학갈 때였고 두 번째는 취업해서 서울로 올라갈 때 그리고 세 번째는 결혼 후 분가해서 서울로 올라갈 때였다.
누구보다 강직하셨던 아버지의 눈물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아버지가 나를 많이 사랑하시는구나.
아버지가 연로하셔서 마음이 많이 약해지셨구나.
동전을 한 주먹 바꿔 공덕동 하숙집 앞 DDD공중전화에서 매주 2회 이상 전화로 안부를 물었던 것도 아버지의 눈물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인간이 `관계`를 가지고 더불어 살아감에 있어서 `계기`는 참 중요한 듯하다.
아버지가 내게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면 나는 영원히 아버지는 강직하고 눈물을 흘리실 분이 아니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내 나이 쉰 일곱, 어느덧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어간다.
나는 딸아이에게 어떤 계기를 만들어 줬을까.
아니면 아직 그런 계기를 만들어주지 못한 건 아닐까.
부모 자식간의 그리움은 혈육이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묻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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