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런 편지를 써야 할까 많이도 망설였습니다.
먼 훗날 이 고마운 마음을 전할 기회조차 없을까 싶어 오늘은 용기를 내어 몇 자 적습니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전제를 깔고 이 글을 씁니다.
당신은 나를 이곳으로 귀농하게 해 준 은인입니다.
귀농지를 찾으러 전국을 헤매고 있을 때 당신은 혜성같이 나타나 나를 인도해 줬으니 은인이 맞습니다.
경북 경주시 양남면에 땅을 사고 귀농하리라 마음억었을 땐 날 듯 기뻤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였습지요.
집사람과 아버님 산소에 들렀다가 작은 개울에서 다슬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고개숙인 우리에게 느닷없이 어떤 할머니가 소리를 지르십니다.
"여~서 누가 고동잡으라 캤어요!"
"예? 아...예..."
"이 고동 우리가 키우는 거니까 잡은 거 다 놔주고 가소!!"
우리는 한웅큼 잡았던 다슬기를 놓아주고 씁쓸한 발걸음을 돌렸지요.
서로 마주보며 말했습니다.
여기는 우리가 살 곳이 아니라고...
나중에 방사선폐기물처리장이 들어온다해서 투기붐이 일었을 때
살 때보다 조금 붙여서 팔았습니다.
그 다음 영덕 고래불해수욕장 부근에 또 다른 땅을 샀지요.
바다낚시를 좋아하기에 가능하면 울산에서 멀지 않으면서 바다를 낀 곳을 찾다 보니 거기까지 갔습니다.
거기는 농촌주택을 짓기가 부적합하여 결국 당장 귀농할 곳은 아니었습니다.
그 땅은 아직 그대로 있습니다. 혹시 나중에 큰 돈이 될지 누가 아나요^^
그러다가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고,
귀농관련사이트 몇 곳을 즐겨찾기해두고 매일 들락거리며 장소물색을 하던 중 당신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닉네임 정도와 지리산자락에 귀농7년차라고 한 당신을 농사전문가라 믿었지요.
글을 쓸 때마다 귀농7년차며 이젠 자리를 잡았다라고 하니 나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귀농에 관심이 많고 그 글을 읽는 사람은 모두 그렇게 믿었을 것입니다.
어쩌다 그 사이트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토론아닌 토론을 하게 되었고
나는 반론에 재반론을 하게 되면서 제법 유명인사가 되었나 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경기도 부천에 사는 어떤 분으로 부터 번개를 제안받았고 당신은 흔쾌히 장소제공을 했지요.
속으로 참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필 번개 다음날인 월요일부터 울산대병원 칫과치료가 예약되어 있어
번개에 참석할 수 없겠다고 했더니 저 윗지방분이 내가 참석하지 않으면 어쩌냐길래
뜬금없지만 오전 열 시가 넘어서 급히 출발했습니다.
그 날은 이 지방에 대설주의보가 내렸고 상당히 많은 눈이 쌓여있는 상태였습니다.
점심식사 중에 나는 합류할 수 있었고
먼저 도착한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몇 시간 나눴습니다.
원래 올 때는 거리도 멀고 곡차도 주거니받거니할 거라 생각해서 하루 정도는 자고 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허무하게 헤어지고 나는 왔던 빙판길을 되돌아갔었지요.
그리고 그 후 그 사이트에서 알았던 또다른 분의 초청으로 전북 군산과 고창을 갔었지요.
군산에서 곡차 한잔 하고 자고 다음날 고창가서 또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귀가해서 컴퓨터에 접속하니 댓글로 놀러오라고 했고 다음 날엔가는 전화 통화도 했었지요? 꼭 놀러오라고.
처음 보았던 이곳의 풍광은 옛날 카렌다에서 본 아름다운 설경 그 자체였기에 매료되었습니다.
며칠 후 정말 나는 이곳으로 놀러오게 되었지요.
농장에서 키운오리(처음엔 잡은 오리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죽은 오리인 걸 알게되었네요)에 각종 약재를 넣었다며 내게 먹어라했고 썩 내키지 않았지만 정말 맛있다며 곡차를 곁들여 먹었지요.
그날 나는 빈손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이 골동품을 수집한다길래 형님께서 독일 유학시절 사용하다 가져온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유명한,방송국에서나 봄직한 릴녹음기를 한 대 선물했지요.
처음 번갯날도 그랬고 그날도 그랬지만 당신은 내 손을 꼬옥 잡으면서 여기와서 함께 살자고 했지요.
시골살이가 외롭다고 하면서요.
`나는 정말 좋은 이웃을 찾아 아직도 헤매고 있습니다. 땅이야 돈만있으면 아무데나 살 수 있지만 좋은 이웃은 어렵잖아요'라고 했지요. 그러면서 그랬지요, 도시에서 너무 많은 사기를 당해서 이제 사람이 싫다고요.
일사천리로 집터와 농장을 구입하고 귀농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엔 몰랐던 일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씩 베일을 벗기 시작하는데 이건 양파보다 더하네요.
내가 집지은 이 땅을 살 때 당신은 `특별하게 작업을 해서` 내가 살 수 있었다고 했는데 나중에 마을 유지에게 들으니 권리관계가 복잡해서 못 팔았던 땅이라더군요. 하기야 부동산공인중개사 교과서에도 나오지요.
`권리관계가 복잡한 땅은 소개하지 않는 것이 좋다`라고요. 말썽 소지도 크거니와 일이 복잡하지요.
나는 그것도 모르고 고맙다고 공인중개사 수수료의 몇 배나 되는 금일봉을 당신께 드렸습니다.
게다가 휴대폰도 하나 해드리고 당신의 장모인가가 아프다해서 병원비에 보태쓰시라고 또 제법 큰 봉투를 하나 드렸지요. 다 지나간 일이고 뭐라 탓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땅을 소개하기 전에 옆 동네 땅을 먼저 권했는데 그 부분은 이의있습니다.
나보다 먼저 귀농하려다 그만두고 간 어떤 사람의 땅인데 그걸 팔아주려고 쓰지도 못할 땅을 나에게 자꾸만 사라고 권했지요. 난 그런줄도 모르고...흐흐흐
나중에 고사리밭도 2,500만 원에 사라고 했고 장모땅도 500만 원에 사라고 했지요. 모두 사찰땅이라 권리도 없고 그저 세얻어 쓰는 땅을...
나같이 당한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만 해도 벌써 몇 명인지...
그래요, 당신들이 사기치고 공소시효 7년 동안을 이곳에서 숨어살았다는 것도 시효가 끝날 무렵에 알았습니다. 당신이 세 부인과의 사이에 아들 하나씩을 두고 모두 의절하고 네 번째 부인과 산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습니다. 뭐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무감각한 분이니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비난은 좀 받아야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제3자가, 전에 다른사람에게 했던대로 나에게는 하지 말라고 충고하니까 다 본인이 선택한 일이니 괘념치 말라고 했다면서요? 당신의 잇속만 챙기면 귀농한 사람이야 죽던말던 상관없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겠지요? ㅇ모씨, ㅁ모 사장, 보살인가 하는 아줌마... 그 양반들 돈들여 땅사놓고 팔지도 못하고 도시로 떠났잖아요. 그 사람들이 어떤 곤경에 처했는지 알지요?
또 다른 이야기지만 네팔로 떠난 그 분.
당신에게 정말 잘했지요? 작업복이며 모자며 일일이 가져와 챙겨줬던 그 분.
당신이 키워 팔던 닭, 돈준다고 잡아달라고 했는데 새벽이라 귀찮다고 전화조차 받지 않았던 일 기억하지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네팔로 홀연히 떠나버렸잖아요. 난 속으로 그분이 떠난 것도 당신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분 몸이 성치않아 가야산에서 요양하던 분이잖아요.
또 다른 이야기 하나.
고창가서 알게된 내 친구에게 나와 같이가서 진도견 한 마리 얻어왔고, 나 모르는 사이에 몇 번 가서 친한척하면서 180만 원짜린가 하는 비싼 개를 얻어왔다면서요. 그 개를 조금 먹이다가 `너무 많이 쳐먹는다`면서 개장사에게 5만 원인가에 팔아버렸다면서요? 내 친구는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당신에게 엄중 항의를 했다면서요?
얼마 전에 들으니 그 친구 개가 그리워 술마시면 운다고 하더군요.
또 다른 이야기 하나.
당신의 세얻은 밭 모퉁이에 서 있던 호도나무를 농로공사하던 포크레인 기사가 가지 하나 부러뜨렸다고 20만 원 요구해서 받았다지요? 기사가 어렵다고 사정을 하니까 청와대에 민원을 내겠다고 했다면서요? 그러니까 그 기사는 돈을 만들어와서 건넸고요.
당신은 당신땅을 놔두고 항상 내 땅에서 쓰레기를 태웠지요? 그러다가 불을 내서 감나무 두 그루를 태웠고요. 나는 당신과 이미 사이가 벌어진 후였지만 지리산에 불을 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오히려 당신 걱정을 해줬지요. 만일 입장이 바뀌었으면 청와대에 민원내겠다고 협박해서 얼마나 달라고 했을까요. 가지가 아니라 나무가 송두리째 죽었으니 몇 백만 원은 우습게 요구했겠지요?
전화기,저울 등을 사다줬거나 용접기나 예초기를 사달라고 해서 용접기는 더 있다가 사줄려고 했고 예초기는 사줬던 일 등 일일이 열거하자면 한도끝도 없으나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제발 앞으로는 귀농하려는 사람 좀 가만히 뒀으면 합니다. 도시에서 찌든 사람이 시골까지 와서 힘들면 되겠습니까? 동네에서 당신과 어울리는 사람은 거의 못봤고 웬 낯선사람들이 들락거릴 때마다 가슴이 콩닥거립니다. 인터넷으로 또 누구를 구슬러서 뒤통수를 칠까 걱정이 돼서 말입니다.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나는 당신께 고마움을 느낍니다.
당신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이 좋은 곳에 올 수 있었겠습니까.
어제 다녀가신 나의 아버지벌 되시는 사촌들이 좋은 곳에 산다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다만 언중유골인지는 모르겠으되
"너 참 용감하고 기특하다! 어찌 여기까지 와서 살 생각을 했노!!"
하십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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