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T.S. 엘리엇>의 서사시 『황무지』 서두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서 이 시의 서문이 자주 인용됩니다.
아마 4.19가 그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게도 4월은 잔인한 달입니다.
최근 천안함 사고를 보면서 먼저간 친구가 자꾸만 떠올라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1978년 4월
먼저 군대간 친구가 휴가를 나왔습니다.
시골 동네는 아래위 서너 살은 친구로 지냅니다.
가까운 옥천암에서 벚꽃도 구경하고
저녁에는 막걸리도 거나하게 마셨습니다.
술잔을 나누면서 줄곧 하는 말이 귀대하기 싫다는 겁니다.
함께한 친구들은 머시마가 그깐 군대갖고 뭘 그러냐고 핀잔만 주고
그친구는 나중에 눈물까지 그렁거리며 정말 귀대하기가 죽기보다 싫다고 합니다.
당시 군대라는 것이 자유롭지 않고 고참들이 까라면 까던 때니까 그냥 참고 견뎌라고 했습니다.
귀대 후 며칠 지나지 않아 비보를 들어야 했습니다. 멀쩡하게 휴가다녀간 친구가 죽었다는 겁니다.
그것도 자살이라니 이게 뭔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린가 싶었습니다. 그 친구는 강릉부근 해안가에서 서치라이트를 조작하는 관측병이었습니다.
이유는 물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가 어떤 때인지 다들 알다시피 그렇게 그는 한줌의 재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중학교 중퇴라 군에 갈 수도 없는 그가 어떤 이유로 군대가서 자살까지 했는지 지금도 모릅니다.
또 다른 한 친구는 대전국립묘지에 묻혀있습니다.
옛날 혹시 `물병장`이라는 병장계급을 들어봤을까요.
훈련소에서 5개월 훈련을 마치면 바로 병장계급을 달고 자대 배치됐던 그 계급.
하사관은 6개월, 물병장은 5개월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받던 그 시절.
자대 배치받고 바로 견장달고 분대장하던 그 시절.
친구는 최전방으로 배치받아 분대장 계급을 달고 소총 네 발을 맞은 상태로 죽었습니다.
군에서 밝힌 사고경위는 이렇습니다.
철책에서 근무교대 중 부하 상병이 뒤에서 엠16 소총으로 쏘았는데 이유는 짠밥도 적은 게 깝죽댔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자면 군대는 짠밥인데 훈련소 갓 출소해서 물병장이 분대장이라고 이래라저래라 하길래 쐈다는 겁니다.
그 친구는 4월에 죽지는 않았습니다.
추석 때 휴가나왔다 귀대해서 죽었으니 아마 10월 경이겠네요.
후일 그 친구 부모님이 만날 때마다 손을 부여잡고 하도 우시길래 왜그러시냐 했더니 이유가 있었습니다.
추석 때 휴가나와서 돈 5만 원만 달라고 하더랍니다. 어디 쓸거냐고 물으니 선임하사에게 10만 원만 주면 후방으로 빠질 수 있다고 하면서 군대생활 도저히 못하겠다고 하더랍니다. 시골 방앗간 집이라 돈도 많습니다. 하지만 돈을 주지 않았다네요. 남들 다 가는 군대 너만 못하냐고 외려 호통을 치면서.
죽은 자식 팬티 고무줄에 5만 원을 꼬깃꼬깃 접어넣고 바느질을 해놨더랍니다. 나머지 5만 원만 더 구하면 속된말로 `물쳐서(상납해서)` 후방으로 빠지려 했던 모양입니다. 물병장들 짬밥 부족으로 군대서 고생들 많이 했잖아요. 견장은 달았지만 짬밥부족으로 분대원 쫄들이 우습게 알던.
특히 물병장으로 죽은 이 친구는 유도를 잘 해서 웬만한 쫄들을 업어치기 메치기로 혼냈을 거라고 부모님은 말하더군요. 그게 죽음까지 가게된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군대서 죽으면 개죽음이라는 말, 참 실감나는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천안함 사고를 보면서 정말 가슴아픈 게 부모들은 평생 아들 친구만 봐도 슬픔을 가눌 수 없다는 겁니다.
"상위 5% 부유층 자녀만 군대에 보내면 전쟁은 자연소멸된다"라고 말한 영화 `식코` 감독 마이클 무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군에가서 유명을 달리한 내 친구들을 생각하면 4월은 잔인한 달입니다.
불귀의 객이 된 친구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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