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잠깐 케이블 방송을 보는데
교양관련 방송에서 경북 군위군 산성면 화본역에 관한 내용이 나오더군요.
옛날 번성했던 화본역이
지금은 간이역으로 하루 한두 편의 기차만 정차하는 자그마한 역으로 변했다는 리포팅이었습니다.
역사 한켠에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로 우뚝 서있는 급수대.
급수대는 증기기관차가 다닐 때 물을 공급하던 중요한 시설이며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경북에 단 세 개밖에 없는 `유물`이라고 하더군요.
방송을 보면서 잠시 옛 추억에 잠겼습니다.
1971년도였으니 지금부터 39년 전인가 봅니다.
그때 저는 중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중학교는 우리집에서 한 시간을 걸어야 갈 수 있는 시내에 있었습니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여름,겨울 할 것 없이 걸어서 다녔습니다.
그해 가을이었나 봅니다.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철길 건널목에서 차단기에 막혀 열차가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새까만 석탄연기와 흰증기를 내뿜는 완행열차는 방금 정차했던 병영역에서 출발했기에 서행을 하였고
기차의 열린 문에는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잔뜩 들뜬모습으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 편지해!"
딱지모양을 한 숱한 쪽지들이 흩뿌려졌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몇 장을 주워들고 집으로 오면서 읽어봤습니다.
아마 수학여행을 다녀오면서 공책을 찢어 급조한,
주소와 간단한 자기소개서(?)가 적혀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일 이쁜 글씨 하나를 골라 편지를 썼더랬죠.
경북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 번지는 기억에 없고 이름은 이인숙이었습니다.
까마득히 잊혀질 무렵 답장이 왔더군요.
나이는 저보다 한 살 위이고 그냥저냥 시골에서 중학교3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이었습니다.
이름과 나이만 겨우 알 뿐
얼굴도 모르는 미지의 학생과 그렇게 수 차례 편지를 교환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순수했던 어린시절 추억이고
만날 기약도 기대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청소년들이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은 기억만 나네요.
30여 년이 지난 지난 2000년 무렵
우연히 민물낚시를 하러 울산에서 간 곳이 산성면 화본리라는 곳이라 또 한번 놀라고...
어제 티비를 보다가 화본역이 나와서 또...
이래서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하는지
별 것 아니었던 지난 일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새록새록 피어나니 이게 추억이라는 건지.
요즘은 휴대전화 문자로 이리저리 뚝딱 주고받는 게 전부라
편지 한통 제대로 쓰는 젊은이가 있을까 생각하면 그들은 무억으로 추억을 남길까 자못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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