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누치를 말려 고향친구에게 보내다

진이아빠 2011. 12. 21. 19:06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불쌍한 누치들>

<잘 마른 누치들을 포장하기 직전>

 

고향에서 공직에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초등학교를 같이 나왔고 그와는 각별한 추억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그 친구는 우리반 반장이었습니다. 이 친구와 나는 시골아이들이라 정말 순진무구했는데  믿을 수없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느 여름날 하굣길이었습니다.

우리반 다른친구의 별난 형이 우리 둘을 협박하여 학교 인근의 산소로 데리고 갔습니다.

다짜고짜 `둘 다 신발벗고 한판 싸우는데 지는 놈은 나한테 죽도록 맞는 줄 알아!`

우린 정말 친한 친구였고 아버지끼리도 잘 아는 각별한 사이였음에도 친구형이 무서워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작!` 하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서로 눈을 감고 주먹을 휘둘렀는데 뭔가 둔탁한 소리가 났습니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이 친구의 앞니 하나가 부러진 것이었습니다.

피를 흘리는 친구를 보면서 무섭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싸움을 붙인 친구형은 얄밉게도 자기는 전혀 개입한적이 없다고 말하라 하더군요.

 

우린 서먹하게 서로 화해하고 찝찝한 마음으로 각자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는데 저녁에 개가 막 짖어대더니 낯선 어르신 한 분이 우리집으로 들어오십니다. 이 친구의 할아버지였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친구에게 들은대로 자초지종을 우리아버지께 설명하셨고 아버지는 저를 불렀습니다.

두 분 앞에 무릎을 꿇었는데 장황한 꾸중과 타이름을 번갈아 하시더군요.

 

`클 때는 누구나 싸울 수도 있고, 때리기도 하고 얻어맞기도하면서 자란다. 다만 앞으로는 조심해라`

한숨을 몰아쉬며 울먹이는 제게 등을 토닥여주셨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 둘은 더 친해져서 초등학교를 마쳤고 중학교 이후로는 각자 다른길을 가게됐습니다.

이 친구는 공고를 졸업하고 일찌감치 공무원시험을 봤던 모양이고 나는 공부한답시고 객지로 나가면서 오랜세월 소식이 단절됐었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낙향해서 어쭙잖은 사업느라 동분서주할 때 이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법령을 자세히 보면 "~허가하지 않을 수 있다" 류의 문구가 제법 많이 눈에 띕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허가할 수도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죠.

이런 조항에 딱 걸렸을 때 하필 이 친구가 담당부서에 있어서 일이 순조롭게 풀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 친구에게는 간단한 일이었겠지만 내겐 많은 영향을 미쳤고 경제적으로도 제법 큰 이익을 준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그 즈음 안 좋은 뉴스를 접하게 됐습니다. 이 친구가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응급수술을 받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후유증이 우려된다는 거였습니다.

두주불사형에다 법없이도 살 그런 친구였는데 참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같이 식사를 하면 수첩에서 뭔가 메모지를 꺼내 살짝 읽어보곤 해서 도대체 뭔가 봤더니 콜레스테롤 수치가 기록된 식단표였습니다. 아마 의사가 기름진 음식을 조심하라고 짜준 듯했습니다.

가능하면 같이 낚시를 다니기 시작했고 육류보다는 생선류를 먹으려 애쓰는 그를 도왔습니다.

인근 방파제에서 쉽게 낚이는 어종은 물론 선상낚시를 해도 꼭 이 친구몫은 챙기려 애썼죠.

 

여기 이사와서도 이 친구에겐 피라미를 낚아 보낸다든가, 직장동료들이 온다하면 매운탕거리라도 준비해뒀다가 먹여보내곤 했지요.

최근 누치낚시를 하면서 내가 안 먹으니까 그냥 살려줬는데 갑자기 이 친구가 생각나서 잡히는대로 한두마리씩 가져오면 아내가 다듬어 소금간을 해서 말렸습니다.

 

약 열흘 정도 말렸을까요?

오늘 여덟마리를 보냈습니다. 열마리 채우려 했는데 낚시가 생각만큼 잘 안 되네요.

특히 요즘은 추워서 강에 얼음이 얼었더군요.

육류를 정말 좋아했던 친구인데, 아쉽지만 이거라도 맛있게 먹어줬으면 좋겠습니다.

 

눈이 오려는지 잔뜩 흐린 날

아내는 1박2일 예정으로 오랜만에 외출하고 이 친구 생각이 나서 몇 자 긁적여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