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박

[자랑질]부산 동래 금정산막걸리 택배로 선물받았어요

진이아빠 2011. 5. 19. 18:44

 

조금전 사진과 같은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이런 내용물이 들어있었습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대통령령으로 허가한 대한민국 민속주 1호

500년 전통의 산성누룩과 금정산의 암반수를 사용하므로 옛날막걸리맛을 느낄 수 있다.

국산쌀 100%, 알콜도수 8도의 살아있는 쌀막걸리입니다> 대충 이렇게 씌어있었습니다.

 

***

지난 5월 8일 모 방송사에 근무하시는 가족분들이 예약손님으로 오셨습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우연히 저희와 곡차자리를 가지게 됐습니다. 캔맥주도 넉넉히 가져오셨고 안주도 챙겨오셨더랬죠. 데크에 앉아 선선하게 불어오는 지리산 바람을 맞으며 새벽 1시가 넘는 줄도 모르고 곡찻잔을 기울였지요. 대화가 통했던 걸까요? 정말 오랜만에 시간가는 줄 몰랐으니까요. 그렇게 다녀가셨던 분께서 예고도 없이 오늘 택배로 막걸리를 보내주셨습니다.

 

***

부산 동래 금정산성은 제게 어린시절 아름다운 추억과 아픔이 고스란히 베어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19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대학진학을 해야 하는데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아 대학진학을 포기했습니다. 당시엔 예비고사가 있던 시절이었고 예비고사만 합격해도 웬만한 대학에 갈 수 있었는데 스스로 포기했습니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님이 학비를 감당하지 못할 거라 생각해서였죠.

 

공직에 계시던 형님께서 조용히 저를 부르시더니 형들이 다섯이나 되는데 너 학비정도 못 대주겠냐며 재수를 권했습니다. 나이는 고작 스무살이었지만 생각은 깊었던지라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형님은 막무가내로 끌다시피 부산으로 저를 데리고 갔지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당시 울산은 소도시라 입시종합학원이 없었기에 부산으로 가게 되었고 형님도 미혼이라 둘은 자취를 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냄비밥을 해먹고 간단히 설거지를 한 후 둘은 각자 학원과 직장으로 갔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도 억지로 끌려와 있을 뿐 대학엔 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은 능력이 안 되시고, 결혼한 형들은 각자 가정을 꾸린 상태기에 어떻게 동생 학비를 끝까지 대주겠냐는 생각이었습니다. 대학을 감으로 인해 더 큰 불행이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던 거죠.

 

정말 힘들더군요. 그래서 학원을 가지 않고 소위 `땡땡이`를 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학원생들 중 친한 아이가 금정산성에 연고가 있었습니다. 친척인가가 음식점을 하더군요. 학원에서 공부해야 할 놈이 온천장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금정산성을 오르내리기 시작했죠. 산성막걸리와 동래파전을 먹으며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쉬었습니다. 난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결국 파전과 막걸리로 철학적 내공만 쌓고 그해 대학진학은 또 포기를 했습니다. 입학원서내러 가라하면 엉뚱한 곳에 가서 실컷 놀다 오고, 시험보는 날도 다른 곳에 가서 놀다 시험봤다고 했죠. 발표날은 낙방했다 하고... 부모님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드렸다는 묘한 충만감과 형님께 진실하지 못한 행동에 대한 죄책감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후일 형님께 이실직고하고 용서를 구했고 대학도 갔습니다^^;;)

 

동래 금정산성 막걸리는 저랑 뗄래야 뗄 수 없는 추억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아마 지금은 밚이 변했겠지만 당시에는 여기저기 염소 뛰놀고 장작불로 군불 뜨끈하게 지펴주던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습니다. 염소고기와 동래파전이 유명했고, 막걸리는 물론 이었고요. 지금도 마을버스가 다니는지 모르겠지만 간혹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리던 버스가 브레이크 고장으로 사고났다는 뉴스를 보면서 추억을 곱씹기도 했었죠.

 

이렇듯 사연많은 막걸리를 받고보니 고마운 마음과 아름다운 추억이 생각속에서 희비쌍곡선을 이루네요. 특별히 오늘 자정에 한병을 따서 시음할까 합니다. 조용한 심야에 오래전 추억을 더듬으며 말입니다. 제가 감성적인 면이 있어서 이런 선물에 크게 감동받습니다. 나름대로 의미부여도 하고요. 오늘은 참 행복합니다. 하룻밤 묵고 가신 손님께서 저를 잊지 않으시고 이렇게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__)

 

ㅈㅎ씨, 약속하신대로 다음에 꼭 다시 오셔서 곡찻잔 기울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