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
고향친구가 전화를 했다.
목소리는 밝았지만
대낮임에도 곡차냄새가 폴폴나는 듯했다.
몇몇이서 휴일을 맞아
가까운 정자항에 가서 봄도다리회에 곡차를 곁들였단다.
내가 여기오지 않았으면
아예 낚싯대를 들고 도다리사냥을 나섰을 터인데,아쉽다.
부러워하면 진다고 했는데
나는 솔직히 그 친구들이 부럽다, 고로 졌다^^;;
***
그 친구는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자동차공장에 취직을 했다. 남들이 대학을 다닐때 산업전선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노력했던 녀석이다. 1997년 `능력이 넘쳐나는 정치세력들` 덕분에 유사이래 듣도보도못한 외환위기를 겪으며 그친구도 비정규직으로 밀려났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동안 실업자신세로 전락하여 술로 지샜다. 마누라는 하청업체에 취직하여 가족부양을 대신하였다.
얼마 후 자기가 근무하던 곳이 통째로 하청으로 넘어가고 일은 그대로인데 급여는 절반으로 깎였다. 마누라와 둘이서 벌어도 전에 받던 월급만큼 안된다며 늘 속상해 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하청에서 마저도 잘렸다고 했다. 이유인즉슨 하청업체 사장이 인원감축을 하는데 자기가 1순위에 해당됐다는 거였다. 처음 하청으로 넘어간다고 했을 때 `대표이사를 네 명의로 해라`고 누누이 말했건만 듣지를 않더니.
그친구가 사실 약간의 백그라운드가 있었기 때문에 본인명의로도 충분히 대표이사를 할 수 있었는데 간교한 계략에 넘어간 모양이었다.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니 마누라 출근하고 아이들 학교가고나면 혼자 할 일이 도무지 없었다. 근교의 산에 가고 저녁되면 친구들과 어울려 술마시는 게 일과라면 일과였다. 더구나 퇴직당한 일이 너무 억울한 모양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자기가 대표이사를 하지 않은 것이 나중에 부메랑으로 작용하여 제거대상이 되었던 모양. 껄꺼러운 직원 하나 얼른 잘라야겠다고 생각한 하청사장이 평소 근태관계를 비롯한 모든 `증거`를 수집해놓고 잘랐던 것. 그걸 알 수 없는 나는 그를 데리고 노동부 지방사무소를 찾아 여차저차 설명하고 약간의 인맥을 동원하여 일을 만들었다.
후일 조사가 진행될 것이며 양자 입회하에 시시비비를 가리게 될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을 듣고 대만족을 했었다. 그친구 속으로 "사장 너는 이제 죽었다, 맞좀 봐랏!" 했던 듯.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형님께서 관련기관에 근무하셨고 그 형님을 통해서 절차를 순서대로 거쳤기 때문에 친구의 하청소장은 상당히 곤란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도 "그래 그런 사장은 혼이나야 해" 라고 생각하고 진전상황에 늘 관심을 갖고 있었다.
얼마 후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난번 그 일 그만둘래"
"왜?"
"꿍시렁꿍시렁 어쩌고저쩌고 존게 존거아이가"
"......"
지금 그 친구는 자기가 일했던 전산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고철 상차하는 일을 하고 있단다. 호이스트 등으로 하니까 일은 수월한 모양이다.
"돈이 얼마 안되어 그렇지 일이야 뭐"
"야! 니 나이에 돈은 무슨, 그냥 일거리가 있다는 걸 고맙게 생각하고 다녀!"
"그래, 안그래도 그렇게 생각하고 다닌다"
그 친구 딸아이는 최고명문이라는 S대학다니다 휴학하고 올해 행정고시 1차 합격, 7월 2차시험을 본단다. 아들은 우리아이와 친구고 역시 대학 4학년에 재학중이다. 내게 늘 하는 말이 너는 아이 하나만 낳은 게 이순신장군 다음으로 존경할만한 일이다. 그래서 너를 존경한다. 나는 걔들이 그렇게 착하고 공부잘하고 부모말에 순종하는데 뭐가 문제냐고 받아친다.
***
사실 하고픈 말은 지금부터입니다.
그 친구는 대기업에서 30년을 몸담았습니다. 늘 하는 말이 대기업다니면 돈 많이 받고 노동운동을 해도 귀족노동자라는 말을 듣는데 그게 억울하다는 겁니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고, 주주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에게는 딱 입에 풀칠하고 아이 건사할 정도만 월급을 준다는 겁니다. 그리고 기업총수의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되는 것도 옳지않다는 겁니다. 가까이서 보면 대기업도 썩었다라는 거죠.
아이를 낳아라, 고령화사회가 되면 노동자가 부족해 나라의 경쟁력을 잃게된다. 노동자 한사람이 노인 몇 명을 부양해야 한다느니 하는 말들은 한마디로 웃긴다는 겁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듯 한번 노동자는 영원한 노동자일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젯점을 그친구는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빈부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이유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는 듯했고요.
최근 발표된 뉴스에 1,000억 원이상 주식을 가진 부자가 139명으로 급증했다고 하더군요. 열심히 일하면 많이 버는 것은 자본주의세계에서 지극히 당연합니다. 과연 그들이 노동자의 피땀을, 눈물을 외면했다면 그 많은 돈이 무슨 의미일까요.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그들은 실천하고 있을까요? 오늘도 KBS는 천안함 침몰관련 특집방송을 한다는데, 언제까지 이런 모습을 봐야 할까요. 무슨 일이 벌어지면 국민에게 코묻은 돈을 거두는 이런 방식.국가가 책임지는 모습이 훨씬 더 믿음직스럽지 않을까요?
외환위기직후 금모으기운동에 금붙이 갖다냈던 사람들이 후회한답니다. 과연 그렇게 해서 서민들의 삶이 뭐가 달라졌느냐. 오히려 가진자들은 더 가지게 된 게 외환위기, IMF사태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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