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메리크리스마스 엔 해피 뉴이어~

진이아빠 2009. 12. 22. 23:49

여기는 시골이라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릴리 없죠^^

작년 이맘 때 저는 필리핀 휴양도시 바기오에 있었답니다.

대통령 하계휴양지 가까운 곳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은 물론 불꽃놀이도 만끽했죠.

 

오늘 하고픈 이야기는

예수를 믿으면 천당가고 안 믿으면 지옥간다는

그 무시무시한 맹신도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고향을 떠나 이곳에 올 때는

도시에서 아웅다웅거리는 치열한 삶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자유로운 심리적 안식도 취하고 싶었는데 글쎄 그게 마음대로 안 되네요.

 

며칠 전 저녁운동을 하러 나갔는데

컴컴한 길에서 시커먼 차를 주차하고 나오는 낯선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 분은 다짜고짜 처음 보는 나에게 바리톤 목소리로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으세요~ 안 믿으면 지옥갑니다~!!!"

 

참 오랜만에

시골에 와서 처음으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여기서도 영혼은 자유를 누릴 수 없구나, 이를 어째-,.-;;;

 

저는 종교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여러가지 종교를 얼치기로 섭렵한 적은 있습니다.

짧게 줄여서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쿨럭~@

 

시골에서 나고 자라

유치원은 구경할 수 없었고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입학 전부터 할머니 손에 이끌려 절에 다녔습니다.

 

그 때는 종이봉지(경상도에서는 봉다리라고 했습니다)에 쌀을 매끼마다 조금씩 넣어 뒀다가

그걸 가지고 절에서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마다 들고 갔습니다.

절에 따라가면 맛있는 쌀밥(당시에 `꽁당보리밥`도 겨우 먹던 시절)이나 고소한 누룽지를 먹을 수 있었기에.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무렵

우리동네에는 침례교회가 하나 들어섰습니다.

잘 아는 어르신들도 다니고 누님들도 형님들도 교회에 나갔었지요.

 

저희 친구들도 하나 둘씩 교회엘 가더군요.

저도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어울려 교회에 다니게 됐습니다.

고작 일주일에 두 번이니 부담도 되지 않았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몇날 며칠 동안 연극 연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유치한 인형이겠지만 인형을 가지고 아기예수 탄생이라는 연극을 했답니다.

 

선배 누나는 마리아가 되겠고

인형은 아기예수가 되겠지요.

암튼 지금 생각하면 그리 아름답지 못한, 성적 수치심이 생길 수 있는 연극을 했지요.

 

연극연습은 잘 되었고

성탄 전야에 아버지 외투를 뒤집어 쓰고 새벽찬송을 갔습니다.

교회에서 5km이상 떨어진 허허벌판까지 북풍을 정면으로 맞으면서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그 추운 새벽에

교인들이 사는 집들을 순회하면서 찬송가를 부르는 게 새벽찬송이었습니다.

교인이 아닌 사람들은, 아니 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어쨌을까 싶습니다.

 

암튼 다음날 크리스마스를 성대하게 치르고

크리스마스 당일도 떡국을 끓여 먹는다든가 오락을 하면서 즐겁게 보내고

그날 밤도 교회에서 자는데 `부작용`이 발생했습니다.

 

남녀 모두 한 방에서 자야하는 조그만 교회에서

중학생 남녀가 타인들을 의식하지 않고 과감한 애정행각을 벌였습니다.

물론 걔들은 이미 시골에서 내노라하는 문제아들이었지만 공공연한 행동에 적잖이 놀랐더랬죠.

 

다음 날

거의 대부분 아이들은 눈감아주고

메리크리스마스 해피 뉴이어를 외치며 헤어졌습니다.

 

민족최대의 명절이 추석이나 설날이듯

크리스천의 최대명절이 크리스마스니까 며칠간 행사가 이어집니다.

어린 나이에 과자도 얻어먹고 떡도 얻어먹을 수 있으니 저도 매일 갔지요.

 

비극은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추석 때 부모님께서 사 주신 운동화

까만색에 구멍이 세 개 뚫린 `배구두`가 없어진 것입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운동화는 없었습니다.

그 운동화는 요즘 아이들이 신는 그런 운동화가 아닙니다.

1년에 잘하면 두 번, 아니면 단 한 번 얻어신을까 말까하는 그런 소중한 것입니다.

 

외출하지 않을 땐 선반위에 고이 올려놓는 신발

눈이나 비가오는 궂은 날씨엔 절대 신지 않는 신발

다음 명절 때까지 아껴신지 않으면 다시는 신을 수 없는 신발이었지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어? 내 신발...ㅠㅠㅠ

 

1주일 내내 죄짓다가

주일(그들만의 일요일 애칭)에 교회나가 회개하는

인간으로서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짓은 제발 이제 그만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주여~

어린 양들을...

불신지옥은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