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초저녁 무렵에 인터폰이 울렸습니다.
"혹시 방 있습니까?"
오랜만에 민박손님이 오신 것입니다.
집사람이 반갑게 안내하려는데 손님의 말씀이 가관입니다.
"요~ 앞에 아이 데리고 있는 아줌마한테 물었더니 그집은 방 있어도 안 주니 다른데로 가라하던데요?"
"방이 있어도 안 주다뇨? 그게 무슨 말인지요?"
"웃기는 아줌마네! 내가 그러더라 카고 한마디 해주소! 뭐 그런 아줌마가 다 있노!!!"
차를 돌려 다른 곳으로 가려다가 밑져봐야 본전이다 하면서 인터폰을 눌렀다고 하셨습니다.
기가막혔습니다.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우리집 옆에서 세 사는 아주머니고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손자를 돌보며 아들내외와 사는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를 갓 지난 할머니입니다.
저희보다 먼저 와서 정착한 분들이고
아들내외는 귀농했지만 생계가 어려워지자 가까운 곳에 직장을 얻어 맞벌이를 하고 사십니다.
우리부부는 아직까지 그 분들께 단 한번도 인사를 하지 않거나 피해를 드린 적도 없습니다.
밤마다 학교 운동장에 운동을 나가면 만나는데 그럴 때마다 인사 꼬박꼬박 잘 했습니다.
인근 5일장에 갈 때나 올 때 만나면 제차로 모시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 분께서 왜 그런 행동을 하셨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들도 이곳에 오기 전에는 경남의 모 소도시에서 살았고
단지 우리보다 조금 먼저 귀농했을 뿐인데 어찌하여 이런 일이 있는지...
주변에 혹시 우리를 시기하고 질시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세뇌가 된 걸까요?
아니면 이방인이라고 텃세를 부리는 걸까요?
우연히 어제 손님은 저의 고향 울산사람이었고
그래서인지 저보다 더 적극적으로 그 사람을 응징하라고 하셨는데...
만일 어제 그 분들이 우리에게 귀띔해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모르고 있을 테고
그 할머니는 계속 우리집에 오는 민박손님을 못 오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소름이 끼칩니다.
할머니는 하는 일이 없고 손자와 어슬렁거리는 게 소일이기에 우리집 앞에서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손님들께 그렇게 했는지 우리로서는 알 길도 없어요.
속상한 마음같아서는 가서 따끔하게 한 마디 해주고 싶지만
연세가 있는 분이라 일단 참고 나중에 아들이나 며느리에게 살짝 알려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습니다.
도시에서 사람들과 부딪히기 싫어서 아무 연고도 없는 이 먼 곳까지 왔는데 여기서도 도전은 계속되려나 봅니다^^
아침 일찍 떠나시면서 몇 번이나 소리치십니다.
"전라도까지 와서 우째살라꼬, 아이고~"
"잘 사이소~"
우리가 불쌍하게 보였나 봅니다.
간밤에 우리에게 한 말씀들을 종합해보면 한편으로 걱정도 많이 하셨고요.
인자무적仁者無敵을 되뇌이며
`오늘도 무사히`라는 운전기사의 마음으로 살아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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