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서 보는 지리산

겨울비가 내립니다

진이아빠 2012. 12. 14. 08:37

 

 새벽부터 비가 내립니다.

침실옆 곶감덕장을 덮은 비닐에 빗방울소리가 똑똑 나서 이른잠을 깼습니다.

잔설이 대지를 하얗게 덮고 있는데 아마도 이번 비에 `눈녹듯` 녹지 싶습니다.

수은주가 아직 영하인 듯한데 눈이 아니라 비가 오니 신기합니다.

그래도 명색이 겨울인데 말이죠.

 

얼마 전 고인이 되신 가수 최헌의 가을비 우산속이란 노래를 참 좋아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비를 좋아해서 그 노래를 좋아했습니다.

노래방이 처음 생기기 시작할 때 노래방에 가서 이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

여름이든 가을이든 비만 오면 말이죠.

 

비를 좋아한 건 가난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릴적 우산쓸 형편이 안 돼 마대자루를 쓰고 다녔습니다.

마대자루 한쪽끝을 접어 넣고 머리에 쓰지요.

비를 가리는 것은 잠시, 물먹은 마대자루는 마대자루만한 저를 무겁게 억눌렀습니다.

 

우리세대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무겁기만 하고 비는 줄줄새는 마대자루를 안쓰겠다고 투덜대다가도 결국 쓰고 학교로 갑니다.

그때는 저 혼자만 그런게 아니라 쪽팔리는 줄도 몰랐습니다.

전교생 중 딱 한 명이 어깨에 메는 가죽가방을 가졌을 정도였으니까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아예 비를 맞고 다녔습니다.

`누추한` 마대자루를 쓰고 다닐 자신이 없어진 거죠.

짚으로 엮어 만든 `우장`이라는 것이 있었으나 어르신들 논두렁에 나가실 때나 쓰지 아이들은 그닥...

한 번 두 번 비를 맞아보니 운치있고 괜찮게 느껴졌습니다.

 

요즘도 비가 오면 비마중을 가끔 나갑니다.

물론 그냥 맞진 않습니다.

골프 캐디용 큰 우산을 받쳐들고 동네 한 바퀴 휘익 돌죠.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도 참 좋습니다.

 

비내리는 아침이라 센티멘털해졌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