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오늘 저녁 산책

진이아빠 2011. 5. 23. 22:25

 

 만개한 아카시아꽃을 따다가 튀김해서 곡찻잔을 기울였던 게 엊그제같은데 벌써 한해가 지났습니다. 세월은 정말 유수같습니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생각납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지`

 오늘은 여늬때와 달리 도로를 따라 실상사로 가는데 길가 아카시아꽃은 만발했고 멀리 천왕봉은 오전내내 내린비의 영향인지 수줍음탓인지 구름속으로 숨어버렸습니다.

 저녁공양을 마친 보광전에는 목탁소리와 스님의 외마디 독경소리만 조용히 울려퍼졌습니다. 땅거미가 내리는 시간인데 불켜진 보광전의 모습이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경내를 치키고 서있는 소나무의 자태가 아름답습니다. 어둠이 깔린 시간이라 선명하진 않지만 부채살 모양으로 활짝펼쳐진 곁가지들이 중생들에게 넉넉한 그늘을 제공해줄 것만 같았습니다.

 보광전 좌측의 스님들 공부방에는 불빛만 새 나올 뿐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습니다. 면벽수행중이신지 용맹정진중이신지...

경내를 한바퀴 휭 돌고 나오는 길, 졸고있는 외등이 바깥세상이라는 걸 알려주는 듯합니다. 멀리 천왕봉은 희뿌연 구름을 머리에 인 채 속세의 번민을 삼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