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계절은 다람쥐챗바퀴처럼 돌고돌아 또 다시 5.18이다.
민주화운동을 하신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겨야 할 날이기도 하지만 내겐 다른 의미가 있는 날이다.
도시의 복잡함과 얽히고싶지 않은 인간관계를 단절하고자 3년 전 이곳으로 이사한 날이다.
닭장같은 아파트의 어느 구멍에 둥지를 틀고 이웃들과 소 닭보듯하며 산다는 것이 한번 주어진 삶에서 너무 억울했다. 층간소음에 단 하루도 자유로울 수 없었고, 공동체삶을 살아가는 군상들의 목구멍까지 차오른 욕심을 보면서 도시탈출을 늘 염원했다.
오늘은 초여름을 방불케하는 덥고 쾌청한 날씨인데 3년 전 오늘은 비가 추적추적내렸다.
단독주택으로 이사할 때마다 그랬지만 아파트를 떠나는 게 내키지 않는 아내는 시큰둥하게 따라나서는 느낌인데다 날씨까지 궂으니 신바람나는 이사는 아니었다. 이사할 때마다 눈이나 비가 내렸다.
시골로 이사오면 아내에게 절대 농사일은 사키지 않겠다는 언약을 하고 나 혼자 가능할만큼만 농사를 짓기로 했다. 그래서 약 800여 평의 대봉감농사를 하게 된 것이다. 농사일이라야 1년에 너댓 번 녹비작물을 예초기로 베고 전지작업하는 정도가 전부니 크게 힘들 것도 없다.
묘목상과 감나무를 추천한 사람의 말대로라면 올해 예상 농업수익은 연 4천만 원이다. 시골살이를 해보니 부부가 단촐하게 살 경우 연 2천만 원이면 궁색하지않은 삶을 충분히 영위할 듯하다. 그런데 감나무는 겨울을 한번 날때마다 수십그루씩 죽고있다. 감나무 대신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할 것 같다.
민박을 하면서 버는 돈이 전체수입이나 마찬가지인데 딸아이 학비도 안 된다. 자금계획이 예상을 빗나가면서 귀촌형귀농을 생각했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져왔던 목돈은 어느새 푼돈으로 갈갈이 흩어져 흔적을 찾기도 어렵다. 귀농을 호락호락하게 보지는 않았지만 어렴풋이 실패한 분들의 잔상을 볼 수 있다.
몸이 힘든 것은 한잔술과 꿀같은 단잠으로 얼마든지 풀 수 있지만 마음이 힘든 것은 치유방법이 없더라. 도시생활을 하면서 숱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느꼈던 일, 빈도만 줄었을 뿐 시골이라고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남의 집 숟가락 숫자까지도 관심의 대상이 되는 시골이야말로 여차하면 안주꺼리가 된다.
그래도 내일이 희망이다.
삶의 질만 놓고 보면 시골은 유토피아임에 틀림없다. 도시 봉급생활자들의 로망이라는 탈도시, 귀농의 꿈을 실현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절반의 성공은 한 셈이다.
적당한 시련은 내일을 위한 자극이라 생각하자.
도전이 있으면 응전도 있기 마련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