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나에게 곡차란?

진이아빠 2010. 11. 18. 12:10

한 마디로 참 친한게 곡차다.

엊저녁에 만나고 오늘 못 만나면 서운한 그런...

 

내가 세 살 때

우리 엄마는 네 칸 초갓집 앞마루에서 커다란 대야에 물을 담아 날 목욕시키려고 앉혀놨다.

대농에 식구들이 많다보니 엉덩이 땅에 붙일 새가 없는 분이 우리 엄마였다.

그래서인지 잠시 자리를 비우고 난 그 새 물이 먹고싶어 대야에 앉았다가 벌떡 일어나 물병을 들었고 벌컥벌컥 몇 모금 들이켰다. 평소 물맛과는 상당히 달랐지만 세 살짜리가 알 수는 없는 노릇.

 

잠시 자리를 비웠던 엄마가 나를 다시 대야에 앉히고 씻기기 시작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몸을 가눌 수 없었다. 엄마는 "야가 와 일노?"(얘가 왜 이렇지? 의 완전 경상도 버전^^;;) 를 연발하시며 씻기는둥마는둥 목욕을 끝냈다. 닦고 옷을 입었는데도 나는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세월이 한참 지난 후 그게 술인걸 알았다.

 

병이 귀한 그 당시에는 소주를 사러가면 병을 가져갔고 우리집엔 투명한 유리병-요즘 주스병같은-이 있었던지라 거기에다 소주를 사다놨던 모양인데 마루 한켠에 물병같이 생긴걸 술이라고 꿈에나 알았으랴.

하늘이 빙글빙글 돌고 먹지도 못 하고 고생 엄청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흘러 국민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친구들이 데리러 왔는데 요즘으로 치면 문제아들 쯤 된다. 몇몇이 어울려 졸업파티를 한답시고 한 되짜리 댓병을 사서 오징어 몇 마리와 술을 마셨다. 겁없는 초딩들이었지. 몇 잔을 돌리고 다들 나가떨어졌다. 두 번째 술과의 만남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다닐 땐 아예 아버지께서 술을 주셨다. 농사일을 하러 들판에 나가면 집에서 담은 막걸리를 새참으로 먹는데 아버지는 꼭 제게도 한 바가지 주셨다. 일하면 배도 고프고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 한다는 명분하에... 그때는 막걸리가 참 맛있었다.

 

스무살이 넘으면서 조금씩 마시던 술이 말술이 되어 어떤날은 저녁부터 마시던 술이 아침에 버스가 다닐 때까지도 마시게 되고 컨디션이 좋을 때는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속으로 `난 술체질인가` 생각할 때도 있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 할 때는 밤새워 아침까지 마시다가 바로 출근할 때도 많았다.

 

요즘은...

곡차라 부르면서 가능하면 적당히 마시려고 노력한다. 곡차...

난 술이 좋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던가? 정말 내게 딱 맞는 말이다.

세 살에 처음 접했던 곡차맛을 기억하는 것이 어쩌면 연어가 수천 킬로미터를 거슬러 태어난 곳을 찾는 이치라고나 할까...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