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어제 구경한 재밌는 광경

진이아빠 2010. 7. 17. 12:00

 

 동네 어르신 두 분께서 장대비속에서 정겹게 낚시를 하고 계십니다. 시골은 농사일로 눈코뜰새없다가도 비만 오면 달콤한 휴식을 취할 수 있기에 어르신들 그 기회를 허투로 날리지 않습니다^^

대충 아무데나 파면 지렁이를 잡을 수 있고 지렁이를 못 구하면 토종벌을 잡아서 미끼로 쓰십니다.

저는 구더기가 미끼로 쓰인다는 건 일찌기 알았지만 벌을 미끼로 쓴다는 건 여기와서 알게됐습니다.

 

굵은 지렁이를 꿰서 툭 던져놓으면 실한 피라미나 동자개(빠가사리)가 물고 올라옵니다.

피라미야 가짜미끼(일명 공갈낚시)로 제가 늘 잡는거지만 동자개는 지렁이미끼를 써야 제대로 잡힙니다.

두 분 앞서거니뒤서거니 동자개를 쑥쑥 뽑아올리시더니 한 분께서 대가 엄청 휘는데 제대로 들어올리지 못 합니다. 순간 `뭔가 대물이다`는 낚시꾼의 직감이 뇌리를 스쳤는데 아니나다를까 엄지만한 민물장어 한 마리와 동자개 한 마리가 동시에 물고 올라왔습니다.

 위에 낚시하던 분이 낚으셨는데 고기를 담을 곳이 마땅찮습니다. 양파망 하나만 들고 오셨던 모양입니다^^;;

아래 파라솔 속에서 낚시하는 분은 살림망을 가져오셨더군요. 올리자마자 용케 바늘을 뱉고 줄행랑치는 장어를 귀신같이 손으로 감싸 살림망에 넣었습니다. 장어가 워낙 미끄러워 맨손으로 잡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거든요. 두 분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십니다. 머릿속이 복잡하셨으리라 봅니다.

 

요걸 푹 고아 보신을 할까, 아니면 회를 쳐서 날궂이 곡차를 한잔할까... 아니지 만날 다리아프다 허리아프다 징징대는 할망구에게 산삼은 못 갖다바치고 이거라도? 혹시 요런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지 않았을까요^^*

어허라?! 근데 살림망에 잘 있을거라 생각했던 장어가 탈출을 감행했습니다. 낚았던 분이 밑걸림이 발생해서 낚싯대를 좌우로 흔들다가 장어가 슬금슬금 기어가는 걸 발견한 모양입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손으로 잡으려면 미끄러지고 잡으려면 미끄러지기를 몇 차례 반복하더니 아뿔싸 사진에 보이는 바윗구멍속으로 쏘옥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두 어르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낚싯대를 팽개치고 구멍을 파기 시작합니다. 잔돌은 손으로 일일이 들어내고 큰 바위를 아예 통째로 뽑고 석축을 다 허물작정이십니다^^;;

 

장어든 뱀이든 꼬리나 머리만 빠져나갈 구멍이 있어도 귀신같이 도망가는데 어르신들 장어를 서툴게 다루셨네요. 암튼 그렇게 낚시는 중단됐고 돌과의 전쟁을 하는 사이 저는 요상한 미소를 머금고 자리를 슬그머니 피했습니다. 그분들을 잘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 돕지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힘들게 삽질(?)하시는데 구경하고 있기도 민망해서...ㅎㅎㅎ

 

헛심만 쓰셨을 그분들 생각하니 한편으론 안됐고, 희귀한 장어를 생각하니 도망 잘 갔다 싶고 뭐 그럼 심경이었습니다. 저 아래에 진양호가 막힌 후 실뱀장어가 올라오지 못해 민물장어가 없을 거라던 분들이 있었지만 자연의 섭리를 인간이 감히 속속들이 알기란 불가능하지 않을까 어제 또 느꼈습니다.

역시 우리집 앞 이 강은 종의 다양성이 살아 숨쉬는, `아직은` 청정지역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