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꽃상여메고 저승따라가다

진이아빠 2010. 4. 11. 11:02

 

 요즘 도시에서는 거의 사라진 풍습이지요. 꽃상여...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화~ 어화오~""

 

앞장선 소리꾼의 선창에 맞춰

상여를 멘 상여꾼들의 후렴이 골짜기에 울려퍼집니다.

 

지방마다 약간의 풍습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관혼상제 중 상을 치르는 풍습은 거의 대동소이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엊그제 동네 어르신께서 별세하시어 몇년만에 상여를 멨네요.

고향친구들과 상조모임을 하기에 자주는 아니지만 간혹 상여를 멨었는데.

 

통상 출상시간은 하관시간을 기준으로 결정되기에

3일장의 경우 둘쨋날 상여꾼들에게 미리 통보가 됩니다.

 

여기는 `동민여러분~`하는 확성기로 방송을 하더군요.

`내일 아침을 일찍 드시고 9시까지 마을회관앞으로...`

 

저녁형 인간에 가까운지라 자정이 넘어서 잠자리에 들기에

혹시 늦잠을 자서 낭패를 볼까 알람을 맞추고 잤는데.

 

여섯 시가 좀 넘은 시각에 확성기가 울려퍼집니다.(성능이 대단해서 대북방송같습니다^^)

`출상시각이 앞당겨져...` 용수철처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대충 요기 좀 하고 나갔습니다.

 

엊저녁 일기예보를 보니 낮엔 덥다고 하여 반팔셔츠에 얇은 점퍼를 입었는데

막상 장지에 도착하니 엄청 춥습니다. 개떨듯 떨다가 불쏘시개를 주워 불을 피웠습니다.

 

불꽃이 높이 날리니 일꾼들 옷에 불구멍들이 납니다.

요즘 옷들이 대부분 합성섬유라 조그만 불티 하나에도 구멍이 쏭쏭~^^ 내 점퍼도.

 

구라청 김양에게 속은 기분도 들고

빵꾸난 점퍼가 아깝다는 생각도 들고...ㅎ

 

상여를 메고 간 거리가 약 500미터 정도였는데

중간중간에 멈춰서 노자돈 울궈내는 횟수는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상주를 상여에 태우기도 하고

때로는 상주 중 한분의 사업체에서 일 도우러 온 분들께도 노자를 꽂으라고 소리꾼이 소리칩니다.

 

상여가 운구되고 있는 와중에 어떤 분이 깡소주를 큰 종이컵에 가득 따라 권합니다.

제발 노자돈 그만 울궈내고 얼른 운구를 마쳐달라는 접대성 곡차지만 일꾼은 반 죽지요. 깡소주에 ㅜ.ㅜ

 

하관시간인 사시에 맞춰 하관을 하고

잔디로 정성스레 봉분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해드리고 점심을 준비해간 도시락으로 했습니다.

 

물론 점심시간에 곡차가 곁들여지고

품위와 거리가 먼 자리인지라 이술저술 위장속에서는 자동 폭탄주가 됩니다.

 

알콜이라는 게 묘하게도 브레이크없는 벤츠라

집에 와서 토종벌집으로 담은 곡차를 곁들이고, 저녁에 집사람이 만든 탕수육에 알콜 55% 이과두주

게다가 밤엔 맥주 서너병을 입가심이라는 미명하에 들이켰더니 허거덩~!!! 저승까지 따라갔습니다^^;;

 

뱀발; 이 지방에서는 관을 함께 묻지 않고 관에서 시신만 꺼내서 묻더군요. 관과 꽃상여는 함께 태우고요.

그리고 참 이색적이고 특이했던 점은 가족묘원을 조성해놨던데 부인묘가 두 개였습니다. 아마 무슨 사정으로 첫부인과 둘째부인이 계셨던 모양입니다. 부군을 가운데 모시고 좌,우로 부인들을 모시더군요.

그리고 먼저 고인이 되셨던 부인께 딸린 아들이 있었다는데 그분 내외의 산소도 함께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40년도 전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홀어머니께서 4형제와 딸을 장성하도록 보살폈다고 하더군요. 고생하신 그 홀어머니가 돌아가셨답니다. 눈물이 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