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그리고 농촌
전 정부에서 입법하여 추진중인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느낌에
며칠 전 강남의 모 주민센터를 800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 `명품주민센터`로 짓는다는 소식.
오늘 버스정류장에 전기히터를 놓겠다는 뉴스와 더불어 이미 전기열선이 있는 의자를 설치했다는 소식...
여러가지 생각이 오버랩되는 건 인지상정일까?
아니면 덜떨어진 나만의 쓸데없는 허상일까?
며칠 전
집 지을 때 함께 설치했던 심야전기보일러의 온수순환장치에 문제가 생겨 보일러업자를 불렀다.
수직배관시 설치하라고 메뉴얼에 나와 있는 체크밸브가 여름내 사용하지 않아 고착된 것이었다.
어차피 교체하더라도 매년 비슷한 문제를 야기한다는 업자의 말을 듣고 아예 제거해버렸다.
그 후유증이 지금 약간 나타나고 있지만 분배기에 설치된 밸브를 수동으로 여닫는 수고를 감수하면 나름 이익이 되는 부분도 있다.
그 작업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요즘은 심야전기보일러 설치가 어렵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심야전기수요가 공급을 초과하여 한전이 적자라나?
그래서 예전에는 30kw 이상의 전기가 소요되는 넓이의 집에도 놔줬는데 요즘은 20kw까지 밖에 안 된단다.
<전에는 `개나소나` 다 심야전기보일러를 놓을 수 있었다.
심지어 러브호텔로 불리는 모텔에도 심야전기보일러가 있지 않은가!
자기네들이 수요예측을 잘 못하여 오늘날 이런 일들이 벌어졌는데 애꿎은 농촌이 불똥맞았다-..-;;>
즉 작은 평수의 집에는 놔준다지만 20여 평의 집 정도? 그래서 일거리가 없는 관계로 개점휴업상태라고 했다.
게다가 점진적으로 전기요금을 올리는데 `현실화`라는 명목으로 심야전기요금을 더 올리겠다고 했으니 누가 심야전기보일러는 놓겠냐고도 했다.
나도 서울에 살아봐서 조금은 안다.
난방은 중앙집중식 난방이거나 도시가스보일러로 개별난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럴 경우 난방연료비가 경유를 쓰는 시골난방비의 1/2에도 못 미친다.
그래서 시골은 목돈이 들지만 빚을 내서라도 심야전기보일러를 놓으려고 애쓰는 거다.
그래도 심야전기보일러가 기름보일러보다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련의 정책들을 보면 시골사람들은 도저히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정책들을 쓰는 것 같다.
농촌에는 이미 초고령화사회가 되었고
오래 전 우리 도시인들의 식량생산을 담당했던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허리가 휘어 일할 수 없고
겨울에는 머리맡에 얼음이 얼 정도의 외풍이 센 방에 보일러도 제대로 못 돌리고 떨고 있다.
막상 농촌에 와서 살아보니 비합리적인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농촌지원 프로그램들이 `공짜`같이 비춰져서 도시에서는 `아, 농촌에 가면 각종 지원이 많아서 귀농이 쉽겠구나`하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은데 절대 아니다.
다시 서울의 버스정류장 이야기로 돌아가서
버스를 타기위해 기다리려면 발끝 손끝이 시리고 추운 건 맞더라, 나도 그랬으니까^^
국민의 절반이 몰려있는 수도권이니 그런 정책이 일견 타당해 보인다.
대중교통, 특히 버스의 교통분담율이 과연 얼마나 되느냐에 생각이 미치면 글쎄...
농촌에서 다른 대안이 없는 상태(도시가스를 넣겠다는 이명박대통령의 발언이 있었지만 그건 농담이라 생각하는 나)에서 심야전기요금을 인상하는 정책과 버스정류장에 히터를 설치하는 정책을 단순비교하면?
언젠가는 식량무기화가 진행되고 식량전쟁을 피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나로서는
우리나라의 농촌을 피폐화시키지 말고 풍요롭게 해주지는 못 할지언정 현상유지라도 해줬으면 싶다.
그것이 내 자식, 우리의 후손들에게 죄짓지 않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나무보일러를 설치한 촌로들은
꼬부라진 허리, 힘에 벅참에도 불구하고 땔감을 구하기 위해 산야를 누비고 계실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서울이나 도시에 사는 나의 아버지 어머니들이시다.
참 거시기한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