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니짜던 어린시절의 흔적
<가마니틀 `바디`로 인테리어 소품을 만들었다>
농촌은 농번기와 농한기가 뚜렷이 구분되었었다.
초봄이면 논갈이가 시작되고 가을 추수할 때까지 농번기에 속한다.
특히 모내기를 시작하면 눈코 뜰 새없이 바쁜데
어린 아이라고 농번기 농사일에 열외는 없다.
지금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농한기임에도 우리집은 늘 바빴다.
고로 농번기와 농한기 구분없이 1년 열두 달이 항상 바빴으니 어린 나는 재앙에 가까웠다.
우리집에는 새끼틀과 가마니틀이 있었다.
낮에 아버지나 형님들이 짬짬이 새끼를 꼬고 밤에는 가마니를 짜는 식의 농한기 겨울.
미취학시절의 어린 나는
힘들고 위험한 새끼는 꼴 수가 없었고 대신 가마니 짤 때 짚 먹이는 것을 도왔다.
3인 1조로 작업이 이루어지는데
바디질하는 아버지와 자질하는 어머니 그리고 나다.
밀 자로 짚을 밀어 넣으면 바디로 내려치고
당길 자로 짚을 당겨 넣으면 또 바디로 내려치는 식의 작업이다.
밀 때는 내가 필요없다.
당길 때 짚을 한 줌 쥐고 있다가 자 끝 고리에 서너 가닥을 물려주면 되는 일이다.
짚은 아래 위의 굵기가 다르기 때문에
베를 짤 때와 달리 지그재그로 아래 위를 번갈아 짜야 가마니가 된다.
낮엔 새끼를 꼬거나 바깥일을 하시고
밤에 가마니짜기를 하기에 밤늦은 시간에 잠을 설쳐가며 작업하기 일쑤다.
어떤 때는 졸다가 혼나기도 하고
자질하는 속도를 못 따라가서 혼나기도 했다.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하기 싫었던지
꾀병도 내 보고 핑계를 대고 친척집으로 놀러가겠다고 우겨도 봤지만 3인 1조가 아니면 안 되기에...
어머니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그 바디를
새끼틀 버릴 때 큰집에서 오래 전에 잘 챙겨서 이사하는 곳마다 저렇게 가지고 다녔다.
지금도 딸아이 방 문틀에 매달린 바디를 보면 그때가 아련하고
딸아이는 드나들 때마다 종을 울리며 재밌어 한다.
옛 어른들의 고생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지금 우리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어쩜 호사에 젖어 억지를 부리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힘 내자~!